
가장 안전하다고 믿은 곳에서 무너진 시스라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는 철 병거를 앞세운 강력한 군대를 지휘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시자 그의 군대는 무너졌다. 시스라는 병거를 버리고 걸어서 도망쳤다.
한때 수많은 병사를 지휘하던 장군이 이제는 자신의 목숨 하나를 지키기 위해 달아나는 신세가 되었다. 힘과 권력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의 삶에도 의지하는 ‘철 병거’가 있다. 돈일 수도 있고, 지위와 경력일 수도 있으며, 인간관계나 자신의 능력일 수도 있다. 그것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하나님보다 더 안전한 것으로 믿기 시작할 때다.
시스라의 몰락은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믿고 있는가?”
시스라는 야엘의 장막으로 피신한다. 당시 야엘의 남편 헤벨의 집과 가나안 왕 야빈 사이에는 평화로운 관계가 있었기에 시스라는 그곳을 안전한 피난처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야엘은 그를 장막 안으로 들이고 덮어준다. 목이 마르다고 하자 마실 것도 준다. 시스라는 안심하며 잠이 든다.
하지만 그가 안전하다고 판단한 장소는 그의 마지막 장소가 된다.
사람은 환경이 안정되면 자신도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참된 안전은 장소나 조건에 있지 않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채 누리는 평안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상황이 불안해 보여도 하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깊은 평안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확인해야 할 것은 환경의 안전보다 영혼의 방향이다.
시스라가 깊이 잠들자 야엘은 장막의 말뚝과 망치를 들고 그를 죽인다. 오늘의 독자에게 매우 충격적인 장면이다. 이 본문은 개인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의 전쟁과 심판이라는 특별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읽어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사람들의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전쟁의 영웅은 강력한 장군이 아니었다. 이름 없는 장막에서 생활하던 한 여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큰 무대와 강한 사람에게 시선을 빼앗기지만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신다.
우리의 손에 있는 것이 작다고 낙심할 이유가 없다.
야엘의 손에는 칼이나 병거가 없었다. 평소 사용하던 장막의 말뚝과 망치가 있었다. 하나님은 특별한 도구만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시간, 경험, 재능, 말 한마디, 작은 섬김도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뒤늦게 시스라를 추격해 온 바락은 야엘에게서 이미 죽은 시스라를 확인한다. 그리고 성경은 그날 하나님께서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앞에 굴복시키셨다고 기록한다.
전쟁의 마지막 주어는 바락도, 드보라도, 야엘도 아니다.
하나님이다.
사람들이 순종했지만 승리를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모든 결과를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몫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어진 자리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사사기 4장의 마지막 장면은 절망 속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강력해 보였던 야빈의 세력은 점점 약해지고 결국 무너진다.
오늘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낙심하지 말자.
하나님의 역사는 때로 조용히 진행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뒤늦게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이미 일하고 계셨구나.”
오늘의 기도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 제가 의지하는 철 병거를 내려놓게 하시고, 오늘 제 손에 주신 작은 것이라도 주님의 뜻을 위해 사용하게 하소서.”














